기타/토끼

토끼를 만난 날-저혈당 쇼크, 포도당, 분유

밤126 2022. 7.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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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끼를 키우고 있다.
2022년 8살이다.

토끼를 포스팅해야겠다는 생각은 이제껏 없었는데
최근 토끼가 아파서 병원에 다니기도 했고
내가 토끼를 처음 키웠을 때 몰라서 실수했던 부분도 기억이 났고
개나 고양이 등의 보편적인 반려동물에 비해 자료가 많지 않았던 점 등의 이유로
토끼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잡다한 지식을 포스팅하려고 한다.




미니토끼





토끼/1살/암

토끼를 처음 만난 건 대학가 길거리였다.
사람들이 몰려있길래 궁금해서 가봤다.

한 노점상이 인형을 파는 것 같았다.
움직이길래 건전지가 든 줄 알았다.
갑자기 덥석 내 손에 쥐여주고 만져보라고 하는데,
살아있는 토끼였다.

다른 구경꾼들이 계속 바뀌는 동안 나는 30분정도 계속 토끼를 만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동물을 아주 싫어하셨기 때문에 데려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내 손에 쥐여진 이 인형처럼 예쁜 동물을 너무 갖고 싶었다.

요즘에야 동물은 함께하는 동반자이고, 돈 주고 사면 안된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당시에는 마트에서도 당당히 동물을 판매하고 있을 정도로(찾아보니 지금도 그런다)
소동물에 대해서는 판매가 자유로운 편이었다.

게다가 노점상 아저씨 왈,
이미 1년 살았고,
"미니토끼"라서 이게 다 큰 거란다.
지금이야, '이게 말이 돼?'싶지만
당시에 티컵강아지같은 것도 있었으니
기술이 발전해서 가능한가 싶기도 했다.
알고보면 티컵강아지도 문제가 많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눈에 띄지 않게 내 방 안에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합리화를 하며 토끼를 집으로 데려왔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미니토끼"는 없다.
그저 굶겨서 못크게 만든 새끼 토끼일 뿐이다.
이런 곳에서 구매하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귀여울 때 팔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 팔던 것과 비슷하다.
병아리가 금방 죽어서 따지려고 해도
노점상은 이동하며 팔기 때문에
이후의 일(건강상태)은 주요 고려요소가 아닌 셈이다.

이런 토끼들은 일찍 죽거나,
살아남아 크게 되더라도 "미니토끼"를 기대했던 주인이 실망하여
유기하는 일도 적지 않다.




토끼는 아파도 치료받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날, 함께 데려왔던 토끼 한 마리가 죽었다.
그리고 며칠 후, 토끼가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토끼가 정신은 있어 보이지만 일어서지를 못하고
누워서 제자리를 빙빙 돌기만 했다.

이미 한 마리가 죽었고 남은 아이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생각에
동물병원에 가고 싶었으나,
일반적인 동물병원에서는 토끼 진료 자체를 거부했다.

그래서 지역 내 모든 동물병원에 전화를 돌려
토끼 진료가 가능하다고 하는 곳을 찾아냈다.

당시 차로 1시간이면 시내 모든 곳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도시에 살았는데,
무려 50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토끼를 봐준다 하여 거기까지 다녀왔다.

그 병원에서 말하길,
몸무게 200g, 생후 2주 된 토끼라고 한다.
토끼는 최소 한달은 어미젖을 먹어야 장내 소화효소가 제대로 생긴다는데,
이 아이는 젖도 안 뗀 애를 사료를 먹이면서 키우니
소화를 못하고 저혈당쇼크가 온 것이라고 한다.
우선 포도당 처방을 해 주지만,
오래 살진 못할 거라고 하셨다.

나는 이전까지 주변에 토끼를 키우던 사람도 없었고,
그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더라도 건초나 사료를 먹이라는 수준의 정보뿐이었다.

이렇게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토끼를 팔던 노점상 아저씨의 말이 거의 절대적이었는데,
미니토끼라서, 사료와 양배추만 주면 산다고 했었다.
토끼를 8년 키운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다.
최소 생후 6개월 이전에 물기가 있는 채소를 주는 것은 금물이고,
사료를 주식으로 하는 것 역시 절대 안 될 일이다.

바늘 없는 주사기에 포도당을 넣어 먹이자 토끼는 다시 다리로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응급처치일 뿐, 계속 이럴 수는 없었다.

젖을 못 떼서 그런 거라면, 분유를 먹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키워드로 인터넷을 뒤진 끝에,
가능하다는 글을 보았고, 토끼 분유는 구하기 쉽지 않으니,
토끼에게 고양이 분유를 먹여도 된다는 글까지 봤다.

고양이 분유야 아무 동물병원에서나 구할 수 있으니
집에서 가까운 동물병원을 찾아 고양이 분유를 하나 달라고 했다.
그런데 고양이 몸무게가 몇이냐, 나이가 몇이냐고 묻길래
토끼에게 먹이려고 한다고 했더니
종이 다르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나에게 고양이 분유를 팔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양이 분유를 사서 토끼에게 먹이니 토끼는 좋아졌다.
나에게 분유를 팔지 않겠다는 걸 어떻게 샀냐면,
지역 거점대학의 수의대학에 전화를 걸어서,
급한 상황이라 그런데, 토끼에게 고양이 분유를 먹여도 되는지 확인해주실 수 있냐 여쭤보고,
그 통화내용을 동물병원 관계자에게 확인시켜주고 구매를 할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정도로 토끼를 볼 수 있는 병원 자체가 별로 없는 데다가,
봐준다고 해서 가더라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분유를 먹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음)




병원비



동물병원을 찾아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병원비였다.
의료보험이 안 되기 때문이다.
2015년 당시, 딱히 검사나 처치, 수술 없이 진료만 봤을 때
포도당 값 포함 20,000~25,000원 정도였다.

2022년 현재는 서울에서 소동물 전문병원에 다니는데
여기는 갈 때마다 피검사를 해서 진료비가 10만 원 밑이었던 적이 없다.
비싸지만 확실하다.

당시에는 전문병원이 아닌 일반 동물병원에서
2만 원씩 내면서 여러번 방문하여
총 15만 원 정도 썼던 기억이 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은 안 되었다.
분유를 사야겠다는 판단도 내가 했고,
병원에서는 토끼가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안약을 처방해주는 등
진짜 '봐주기만' 한다는 느낌이었다.




분유 먹이기



분유를 먹이는 건 건강한 토끼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나처럼 젖을 덜 뗀 아이를 키우거나,
혹은 수술 후, 나이가 너무 들어서 못 움직일 때 등에 한하여
대신 먹여주면 된다.





분유 포장지에 쓰여있는 비율대로 따뜻한 물에 분유를 개어
바늘 없는 주사기로 빨아들인다.

토끼 입에 대고 아주 천천히 한 방울씩 흘려주면 된다.
너무 많은 양을 한번에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토끼는 코와 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서, 코로 들어갈 수도 있다.
토끼는 기본적으로 자기 침으로 몸을 닦아 깨끗하게 하는 그루밍을 하기 때문에
입 근처에 묻으면 핥아먹는다.

하지만 토끼는 피부가 약해서 너무 많이 묻히면 피부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 적응되지 않았을 때 이렇게 조금만 묻혀주면 되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토끼가 스스로 먹으려고 한다.

토끼는 목소리가 없어서 짖지도 못하는데,
의사소통을 엄청 잘한다.

분유를 먹다 말고 고개를 휙 돌리면 먹기 싫다는 뜻이다.
먹다 남은 주사기를 한쪽에 놓으면,
토끼가 배가 고플 때 주사기를 물어뜯고 있다.
(새끼토끼는 이빨이 많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라서
주사기 플라스틱을 씹어먹을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그럴 때 주면 잘 먹는다.

한 번은 물통을 갈아주려고 물을 비웠는데 깜빡하고 새 물을 안 가져다준 적이 있다.
그랬더니 토끼가 내 무릎을 코로 톡톡 치더니
물통이 있던 자리에 앉았다가 내 무릎을 치기를 반복했다.
똑똑한 녀석..

하여튼 이렇게 분유를 주는 기간은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데,
분유를 줌과 동시에 알파파 건초를 토끼집에 항상 두고 있으면
언제부턴가 건초를 먹고 분유를 찾지 않게 된다.
그럼 분유를 끊으면 된다.
나는 이 기간이 한 달 정도 됐던 것 같다.







갑자기 <토끼> 카테고리를 만들면서
왜 그동안 이 얘기를 쓸 생각을 안 했을까, 싶었다.

생각해보면 임대주택 시리즈와 비슷하다.
나도 토끼가 죽을 고비 몇 번 넘겼지만
그 고비를 넘기는 데 집중하다 보니 너무 지쳐서
이걸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그냥 쉬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정보가 필요할 땐 언제나 다급하게 찾아본다.
하지만 크게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보통은 동물병원 광고 거나,
"토끼가 이렇게 이렇게 아픈데 …"이런 제목에 이끌려 들어가 보면
뒤에 가려진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식이다.
물론 댓글은 별로 도움 되는 내용도 아니다.

그래서 가입한 토끼 카페는
주로 자기 토끼 자랑하는 공간인 데다,
대부분 질문글이다.

그래서, 8년이라면 나름 오래 키운 편인데
이 중에서 하나쯤 도움 될 게 있겠지 싶어 한번 적어본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
지금은 당연한 걸 그때는 많이 놓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엔 그럴 수 있지만 토끼에겐 많이 미안하다.
그래서 늦게나마 잘해주려고 하고는 있는데
토끼도 그렇게 생각할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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